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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21년04월19일 10시28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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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악장 겨울무대, ‘커튼콜’을 꿈꾸지 않는다 2
안순진 어르신 1944년
안순진 어르신 1944년
3악장 가을, 열정 번민 수시로 가슴을 후벼 파는 삶의 그림자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줄 알았지만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 하지는 않았다. 남편은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었지만 사업은 운이 따라주지 못했다.

결국 나도 경제활동 현장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성격상 섬세한 여성의 일보다는 배포 크던 시절이라 부동산이 활황이었을 때 집을 지어서 팔고 수익을 내곤했다.

허름한 집을 사서 예쁘게 고쳐서 팔고 수익금을 남겼다.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운명을 받아들였다. 인생의 이면은 다 고단하다. 내색하지 않을 뿐이다.
 
허름한 집을 구하러 다니려면 수많은 발걸음으로 발품을 팔아야 했다. 권위적인 남자들은 바깥세상에서 자기 이름 남기는 것을 우선으로 여긴다.

가정은 그림자 같은 존재라 아내에게 맡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남편도 예외일 수 없었다.
 
내가 아이들을 챙기고 거두었다. 여자들의 희생이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내 트레이드 마크가 된 도르르 말린 앞머리는 그 때 만들어졌어. 앞머리를 구리포로 말고 뒷머리는 올려 핀으로 고정 시켰지. 남들 보기에는 영화배우 같은 스타일이지만 숨겨진 이유가 있어. 알고 보면 미용실에 가주 가지 않아도 되는 머리 스타일이야. 아이들 키우고 경제 활동하는 일들이 쉽지 않아서 내가 절약할 수 있는 것들은 절약을 해야 했어. 그때 멋도 놓치고 싶지 않고 생활인으로서도 살아야 해서 만들어진 헤어스타일인데 지금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어. 가려진 이면은 다 애잔하고 아파.”
 
한창 건설 경기가 붐을 이루던 시기라 남편도 사우디에 1년을 다녀오고 나도 집을 사고파는 일을 계속하면서 우리는 남부러울 것 없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

물론 화려한 외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모르는 속앓이를 담보로 해야 했다. 
 
나만의 자녀 교육 방식도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면 결과적으로 옳았다. 딸 셋을 키우면서 한 번도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졸업하면 한 달씩 해외여행을 시켰다. 강요된 공부보다 넓은 세상에 발을 디디고 손으로 만져 보는 것이 아이들의 미래에 더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었다.

딸 셋은 각각 큰 딸은 캐나다에서 당당하게 입지를 굳혔고, 대전에서 살고 있는 딸은 나에게 좋은 친구로 내가 병원에 갈 때마다 좋은 벗이 되어준다. 막내딸도 상해에서 본인이름을 알리면서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큰 딸이 “엄마 나 결혼자금으로 외국에 나가서 제 꿈을 펼쳐볼게요.” 라고 선전포고를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우리 큰 딸이 50을 바라보면서 캐나다에서 입지를 굳힌 여성이 되었다. 
 
당시는 몰아치는 폭풍우에 힘들었지만 견뎌낸 시간이 주는 보상은 달콤하다.
 
대전에서 치열한 현역을 마치고 소읍에 정착한지 8년이 되었다. 서울에서의 유년과 학창시절 추억은 달콤하다. 대전에서의 치열한 삶의 현장도 짠 내 나지만 끝 맛은 달콤했다.
 
4악장 겨울, 황홀한 유배지, 노년의 안식처
 
소읍에서 8년, 석양아래 반짝이는 윤슬처럼 보드랍고 따뜻하다. 고즈넉한 하루하루는 나에게 큰 휴식이다. 나에게 큰 관심 안 가져주는 이곳이 이렇게 편안할 줄 미처 몰랐다.
 
연고가 없던 소읍은 돌아가신 엄마가 사후에 화장(火葬)을 원치 않으셔서 매장지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다.

안남면에 땅을 사고 나무를 심었다. 아직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나는 가화리에서 안남을 오가며 내 땅에 나무 한 그루씩 심다보니 어느새 야산을 이뤘다. 
 
시골마을에 주소를 두고 정착을 시작했을 때는 귀향살이하는 마음을 바로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유배지로 시작한 이곳이 이제 안식처가 되었다.  
 
100세 시대라지만 지금 우리나이는 연장전에 들어간 나이다. 현역에서 전반 전 후반전 치열한 승부를 펼치고 이제 막 연장전에 돌입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지만 그저 별 탈 없이 노년을 보내면 그게 바로 나와의 승부에서 진정한 승자가 되는 것이다.
 
복지관에서 영어 중국어를 배우고 인문학 강의를 들으면서 내실 있는 소일을 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져 다시 강의를 듣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

아파트 앞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건강빵을 사들고 산보를 한다. 고소한 빵을 식탁에 올리고 창가로 내비치는 햇살을 마주 한다. 홍차 한 잔 곁들이는 이 고즈넉함이면 됐지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
 
속이 불덩어리처럼 열망으로 가득 했을 때 애써 태연한척 버티느라 힘들었던 때도 견뎌냈다. 분홍빛깔 홍연을 감추느라 타들어가는 속도 달랬다. 
 
돌아보면 고비가 아닌 때가 없었다. 인생은 산 넘어 산 이었다.
 
감정은 시시때때로 오선지의 음표처럼 오르내렸다. 힘줄은 팽팽해지고 시선은 끝 모를 위를 향하느라 다리가 휘청거렸다.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번뇌의 널을 뛰던 날들을 뒤로하고 이제는 그저 고요하다. 이 고요함이 곧 행복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아 차렸다.
 
이름처럼 예쁜 곳 가화리, 내가 여정을 마치고 여생을 보내는 곳이다.
 
이제 무대에서 내려와 커튼콜이 없어도 서운한 감정이 일지 않는다. 시시때때의 감정 선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저 지그시 내가 섰던 무대를 바라볼 수 있다.

이제 진짜 나를 만났다. 커튼콜을 꿈꾸지 않아도 되는 소박한 하루하루는 황홀한 유배지 소읍이 안겨준 선물이다. 
안순진 어르신 194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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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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