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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21년05월20일 09시46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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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천에 핀 목단 꽃, 작은거인 송수돈 어머니 인생에세이 1
어르신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
작은 거인 송수돈 어머니 인생 에세이

무명천에 핀 목단 꽃은 고덕면 상장리 시골 마을, 여산 송씨 할머니와 많이 닮았다.

365일 내내 고단했던 그 때는 무명천 밑에 실타래처럼 얼기설기 매듭을 풀 수 없이 하루하루는 뒤엉켰다.

한 올 한 올 풀어가면서 무명천위로 목단 꽃이 피어올랐다. 한숨과 세월로 한 땀 한 땀 놓은 수는 자태 고운 목단 꽃은 코끝을 간질거리는 향기대신 80년 켜켜이 쌓인 인생의 향기로 마당 한 편에 도란도란 모여 앉았다. 
 
 발그레한 뺨이 붉어 꽃봉오리 같던 봄날의 청춘을 뒤로하고 이제는 고향 마을의 뿌리 깊은 나무가 되었다.

아득히 멀리 와 버린 그 날의 기억들, 안타깝지만 허망하지 않은 건 두꺼운 외피를 벗고 속살을 기꺼이 내 보일 수 있는 내공이 다시 만들어졌다.
작은 거인 송수돈 어머니 인생 에세이
딸 부잣집 엄마.
딸만 줄줄이 낳던 시절에는 그 이름이 반갑지 않았다. 세월이 변해서 이제 딸 부잣집 엄마들이 으스대는 세상이 됐다.

오래 살다보니 이런 좋은 세상을 만났다. 변하지 않은 건 우리 아이들이 나고 자란 우리 집, 시집와서 큰 형님내외와 같이 살다가 5년 만에 이 집으로 제금 나와서 그 이후로 내내 이집에 주소를 두었다.

주신이 주미 주란이 주윤이 주나 은주 은정이 우리 7남매가 서로 주고받는 남매의 정도 모양새가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 애들의 정이 넘쳐 나이든 내 차지까지 온다. 내가 서글플 겨를이 없게 하는 우리 아이들, 내가 한숨 쉴 틈이 없게 하는 우리 아이들. 필목장사 하던 시누가 자주고름 노란저고리로 나를 꼬드겨 열여덟 살에 시집가서 쪽 잠자며 고단했던 날들, 줄줄이 딸만 낳을 때는 마음고생에 기댈 곳이 없었다.
 
남편 먼저 보내고 허전함을 달랠 길 없던 그 날들도, 이제 덤덤하게 지난 기억의 저편에 자리 잡았다.

아프지 않은 건 지금 더 행복한 추억 보따리들이 많기 때문이다. 골 깊은 주름이 여든 살이 넘은 나를 가리켜 주지만 아직도 텃밭에 나가 손을 놀릴 수 있다.

주말이면 집 마당에 꽉 들어찬 우리 아이들 차가 나를 싣고 꽃놀이, 맛있는 집 찾아 가느라 쉴 틈이 없다.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남편한테 미안한 마음에 꿈에서라도 보려나  마음 졸이며 잠을 청하지만 어째 그이는 한 번도 보이지 않는다.

야속한 그니. 잘 있다는 말일게다. 무소식이 희소식이 되어 나는 여기에서, 그니는 거기에서 잘살고 있다.
 
내 삶이 무명천에 핀 목단 꽃처럼 자수 천 밑으로 얼기설기 실타래가 엮였지만 자수천위로 피어오른 모란꽃은 내 인생처럼 곱게 피어났다.

인향만리라고 했던가, 내 인생의 진한 향기가 만리까지 퍼져 우리 아이들 곁에 내내 머물 수 있다면 여한이 없다. 
작은 거인 송수돈 어머니 인생 에세이
-추억 보따리 매듭, 네 가지만 풀어보자면-
 
첫 매듭 -노란저고리 끝동이 맺어준 천생연분
 
열일곱 살, 필목 장사하던 우리 동네 성님은 나한테 자주고름이며 노란 저고리 끝동을 수시로 손에 들려주면서 “참하다 예쁘다”며 덕담을 건네주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다 나를 꼬드기는 뇌물이었다. 
 
나는 올해 여든넷이 됐다. 합덕 신리가 고향이다. 딸만 셋인 집에서 자랐는데 동네 이웃으로 지낸 성님이 나를 예뻐해 주셨다.

댕기머리 따고 앙증맞던 17살, 동네에 필목 (비단)장사하던 그 성님이 돈으로 치면 적잖은 양의 자주고름이며 노란저고리 끝동을 받기 미안할 만큼 슬며시 손에 쥐어주곤 했다. 처음에는 고운 빛깔에 마음을 뺏겨 넙죽 넙죽 받았지만 값으로 쳐도 적잖은 것이라 
 
“안 받을래요” 사양을 했다. 그래도 주는 손길이 멈추지 않아 난감해 하고 있을 때 필목장사 성님이 나한테 넌지시 말을 꺼냈다. 침을 꼴깍 삼키는걸 보니 어째 어려운 얘기를 하려나보다
 
“우리 남동상이 하나 있는데 아직 장가를 안 갔어. 그란디 손이 한 짝이 없어. 군대 가서 사고가 났는데 사람은 미끈하고 인정도 많아”
 
신통방통한 것은 그 말을 듣자마자 “에구머니 뭔 소리여” 해야 하는데 나는 얼굴도 못 본 남동상 이라는 그 양반이 괜스레 측은했다.

혹여 시집이라도 가면 고생은 맡아놓은 당상인데 그 생각은 안 들고 젊은 사람이 손이 없어서 어쩐데요 괜한 걱정까지...

그래서 만났지 뭐여 천생연분 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예리 덜(18)살, 남편이 스물일곱 살이었다. 12월 동짓달에 시집오고 그 집안에 다달이 좋은 일이 생겼다. 어른들이 한 짝 손으로도 장가들게 생겼다고 경사 났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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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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