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신문

안양대 서정미 교수, 장준하 선생 제43주기 추모식 사회 진행

김은영 기자 | 기사입력 2018/08/20 [09:35]

안양대 서정미 교수, 장준하 선생 제43주기 추모식 사회 진행

김은영 기자 | 입력 : 2018/08/20 [09:35]
장준하 선생 제43주기 추모식

[안양신문=김은영 기자] 장준하 선생의 제43주기 추모식이 18일 경기도 포천 선생이 숨진 상태로 발견된 약사계곡 현장에서 장준하100년위원회 주관으로 열렸다. 

추모식은 박윤국 포천시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장준하100년위원회 회원 및 유족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추모사, 추모곡제창, 유족 인사,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경기 안양의 안양대학교 서정미 교수가 고 장준하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고 장준하100년위원회에서 국제위원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어 화제다. 이날 추모식 사회자 서정미 교수의 선창에 따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제창했는데, 서정미 교수는 “장준하 선생은 감옥에서 나온 후, 자주 등산길에 오르셨습니다. 태백산에 올라서는 조선 땅의 주맥을 짚으며 문수봉 가는 길의 호젓한 숲의 터널을 즐겼고, 산 정상에 오르면 맨 먼저 북쪽을 향하여 통일을 염원하는 묵념을 올리고 ‘애국가’를 힘차게 부르기도 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광복군가’를, 때로는 젊은 동지의 선창에 따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는 여기 계신 모두, 장준하 선생님의 그때를 떠올리며 함께 저의 선창에 다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부르겠습니다.”라며 장준하선생을 추모하고 그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굳게 다졌다.  

장준하 선생 제43주기 추모식


평안북도 의주 출신인 장준하선생은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되어 중국 쑤저우〔徐州〕지구에 배속되었으나 6개월 만에 탈출해 한국광복군간부훈련반에서 훈련을 받았다. 1945년 1월 충칭〔重慶〕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도착하고, 곧바로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되었다.

특히 미국 전략사무국(OSS: Office of Strategic Services)이 주관하는 특별군사훈련을 받고 국내에 특파되었으나 작전 도중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듣고 돌아왔다. 광복 이후 잡지『사상계』를 간행하였고, 민주화운동에 활발하게 나섰다.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투옥되었으나, 옥중 당선으로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1975년 박정희 정권에 대항하는 모종의 거사를 준비 도중,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최후를 맞았다. 당시 유신정권은 하산 도중 실족사로 발표했으나, 사건 직후부터 박정희 정권에 의한 타살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1993년 민주당 진상조사위원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이 사건을 재조사했지만 아직까지 타살 여부에 대한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

1991년 8월 15일 건국공로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고, 1993년 4월 15일 제1회 한신상이 추서되었다. 1999년 11월 1일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장준하100년위원회는 26일 서울광장에서 장준하선생 탄신 100돌 기념행사를 마련한다. 한국광복군 체험을 비롯해 다양한 시민참여 어울림 한마당을 준비 중이며 이 날 장준하선생 관련영상에서 서정미 교수는 장준하선생 부인인 고 김희숙 여사로 분하여 내레이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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