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동네에 하나쯤은 그런 집이 있지 않았던가. 크고 고풍스러우며 아름다운 정원이 있지만 높은 담에 둘러싸여 대체 어떤 사람이 사는지 궁금한 그런 집.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의 버찌마을 100번지도 그런 집이다. 동네 아이들은 아무도 살지 않는 이곳을 ‘거인의 집’이라 부르고, ‘크리스티앙 강 헌터’라는 고집불통 외국인이 주인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어느 봄 날, 진짜 크리스티앙 강 헌터가 자신의 오래된 빈집으로 돌아온다. 집주인 강 노인은 사실 거인도 아니고 외국인도 아니다. 그는 굴지의 건설회사 회장이자 수석 디자이너로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머리에 암이 생겼음을 알게 된 후, 일에서 벗어나 조용히 지내고자 어린 시절의 추억과 상처가 깃든 버찌마을 100번지로 돌아온 것이다. 사실 100번지 집은 강 노인 가족이 소유했던 집이 아니고, 그의 아버지가 일꾼으로 일하는 대가로 방 한 칸을 얻어 살았던 곳이었다. 강 노인은 어린 시절에 이곳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얻었고, 주인 가족이 몰락하자 모종의 복수심에서 집을 사들였다. 그런데 막상 100번지에 돌아와 보니 이곳은 골칫거리 투성이였다.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은 집의 뒤뜰을 통해 뒷산을 오르내리고, 닭과 고양이와 강아지가 들락거리고, 치매 걸린 할머니 한 명은 뒤뜰 안에 밭을 가꾸고 있다. 강 노인은 처음에는 분노하고 뜰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지만, 그들이 있어야 뒤뜰의 질서가 유지됨을 깨닫고 서서히 마을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리고 55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유년의 상처와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자신의 마음 깊숙이 숨어 있던 상처받은 아이와 만나고 이를 치유하는 강 노인의 모습은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위로를 선사한다. 자신만의 성을 공고히 쌓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성에 문을 내고,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작지만 확실한’ 기쁨을 알아가는 강 노인의 이야기는 동화처럼 따뜻하게 그려진다. 일러스트레이터 봉현의 아름다운 삽화도 정취를 더한다. <저작권자 ⓒ 안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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