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봄을 살라먹고 여름까지 엄습할 자세다. 재택근무, 수업, 영상예배 등이 정착(?)되고 경조사 왕래도 온 라인으로 처리 하다 보니 평생 쌓아 온 우정이 가랑잎 처럼 말랐다. 금방이라도 툭 부러질 것 같은 메마른 정서를 어찌 할 것인가? 친구야 올해도 고향 언덕엔 살구 꽃이 피었었지? 친구에게 편지를 쓰다가 지붕에 올라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를 중얼거려 본다. 내 벗이 몇이냐 하니 水石과 松竹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고야. 자연에서 친구를 찾을 수 밖에 없었던 은거 생활 중에 있는 고산孤山의 마음을 이해할 듯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 하는 외화外畵?는 저녁 노을이 지는 들녘에서 가난한 농부 부부가 교회당을 향해 기도하고 있는 만종晩鍾이라고 한다. 이 그림을 그린 밀레(프 ,1814~1875 )는 처음부터 서양을 대표하는 화가가 아니었고 그림이 팔리지 않아 빈곤을 견디다 못해 파리에서 30 마일이나 떨어진 시골 남의집 헛간에서 농사 품팔이를 하면서 농민들의 생활을 그렸다. 이를 안 친구 루소 (프, 풍경화가 1821~1867) 가 어느날 찾아왔다. "여보게 드디어 자네의 그림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났네" 밀레는 친구의 말에 기뻐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왜냐하면 그림을 팔아 본 적이 없는 무명화가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나더러 그림을 한점 골라 달라고 선금을 맡기기에 가지고 왔네.여기 300프랑이 있네" 가난에 찌든 밀레에게 그 돈은 생명줄이 되었다. 그후 생활의 안정을 찾게 되고 그림에 몰두 하여 저녁종, 이삭줍기, 양을 치는 소녀, 거위를 키우는 소녀 등 좋은 작품을 내 놓아 화단의 호평을 받아 비싼 값에 팔리기 시작하여 경제적 여유를 찾게 되었다. 어느날 밀레는 친구 루소를 찾아 갔다. 이게 웬 일인가? 몇년 전에 루소가 남의 부탁 이라면서 300프랑에 사간 그림이 그집 벽에 걸려 있는것이 아닌가? 밀레는 그날 친구의 배려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국민 방학을 보내고 있는 이때가 친구들 간의 관계가 더 돈독해 질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한다. 밤이 어둘수록 별은 더 빛나고 친구가 고플수록 우정의 깊이는 더 하여진다.
한자로 친구親舊의 친할친 자는 立설입+木나무 목?+見 볼견이 합 하여진 글자로 나무 위에 올라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서로 간에 살핀다는 의미이며 우정은 금방 이루어 진 것이 아니고 선 후배 간에 대대로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이어 진 것이다. 우리 모두의 친구 관계가 밀레와 루소처럼 일 계급씩 특진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안양 시민들의 행진에 청신호가 켜지기를 기도합니다. <저작권자 ⓒ 안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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