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신문

아름다운 청춘, 송영자 어르신

김민규 기자 | 기사입력 2021/03/15 [10:21]

아름다운 청춘, 송영자 어르신

김민규 기자 | 입력 : 2021/03/15 [10:21]
송영자 어르신
세 번째 행운-교련교사 전행고시
 
​나는 순수한 소녀시절도 아름다운 처녀시절도 그냥 관통하고 말았지. 인간으로 태어나 특히 여성으로 성장하면서, 출산을 통해 인간존재를 인식할 때 그래도 나는 슬펐네. 나는 아름다운 영혼을 지녔고 지나치게 총명하였고 공부를 위해 전투적이었다.

한결같이 벌이는 사업마다 실패하는 남편이지만 나를 사랑하였고 받지 못한 엄마의 사랑을 내게 주었기에 나의 엄마이고 아버지라네. 감사할 뿐이라오.
 
 서울에 올라가서 셋째를 해산했을 때 친구 지영이 전공과목만 보는 교련교사 전행고시가 곧 있을 예정이라고 전화를 했다.

지영이는 그보다 먼저 나에게 귀인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소록도로 수학여행을 간단다. 수학 여행비가 6천 원이었는데 당시 쌀 서너 가마니 값이었다.

월 1천 원의 수업료도 제때내지 못해 밀려있는 나의 형편에 수학여행이란 말은 집에서 불문률이었다. 그런데 수학 여행비를 완납한 학생들의 명단에 나의 이름이 올라와있었다. 서랍을 열어보니 지영이의 메모가 들어있었다. 
 
“영자야 걱정하지 말고 수학여행 때 즐겁게 지내고 좋은 추억을 쌓겠다는 마음의 준비나 잘하렴.” 가지런히 적힌 메모를 읽고 나는 한없이 눈물만 흘렀다.

고맙고 염치가 없었지만 수학 여행비에 간식비, 수학여행 중에 가장 중요한 사진사의 촬영비용 등을 모두 지영이가 함께내주었고 나는 몸만 다녀왔다.

수학여행 내내 소록도의 잔잔한 풍경보다 지영이가 보여준 아름다운 하늘에 넋을 잃고 있었다.

지영이 손을 꼭 잡고 누워 밤하늘의 별들을 세던 그 밤을 어찌 잊을까. 평생의 은인 고마운 친구, 지영아.
 
 나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해산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서류준비부터 하였지만 이미 접수 마감이 끝났다.

나는 퉁퉁 부은 몸을 가지고 구비 서류도 갖추지 않은 채 교육위원회로 달려가서 아침부터 과장책상 옆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제발 시험만 보게 해달라고 읍소하였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세 아들의 어미에다 가장 노릇하는 아내였기에... 오후 네시쯤 당황한 과장이 임시접수를 받으며 내일 오전 10시까지 구비서류를 제출하지 않으면 자격상실이라고 엄중히 말하였다.

남편과 택시를 타고 서울지방병무청으로 가서 예편한 간호장교들의 병적필름에서 나의 병적기록을 확인 후 병적 확인서를 기적같이 발급받아 제출하고 시험을 무사히 치르고 마침내 교련교사 2급자격증을 받았다. 내 인생은 길목마다 외줄타기의 연속이었다.
 
교사, 눈부신 날들
나는 즐겁고 신나게 학교에서 근무했다. 아침 제일 먼저 출근해서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전등을 환하게 켤 때 전율이 올 정도로 행복하였다.

커피도 열심히 타주었고 퇴근할 때 교무실 불을 끄고 나왔다. 무학여고 시절 100여 명의 남녀교사가 근무했었는데 내가 새 옷이라도 입고 가는 날이면 하이힐을 신고 패션쇼도 불사했다.

무학여고에서 담임을 맡은 반 조 은경이 살포시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책상 위에 무언가를 놓고 달려 나간다. 편지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봉투를 열어보니 볼펜을 꾹꾹 눌러 예쁜 글씨체로 내게 감사의 편지를 쓴 것이다.

다른 반 아이들이 내가 우리 반 아이들 모두에게 봉숭아물들이기 이벤트한 것을 부러워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아이가 바라본 나는 어떤 모습일까  자신은 집에 가서 내 자랑을 많이 한다고 한다.

내가 자주 하던 말인 “나한테 지식을 배울 생각을 하지 말고 내 생활 자세를 배워요. 내 생활 자세는 남에게 가르칠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것 때문에 이 자리에 자신 있게 설 수 있는 거에요.”라고 말한 것이 자주 떠오른다고 했다. 내가 아이들 자율학습 시간에 감독한다고 멍하니 있지 않고 아이들 사물함을 열심히 닦았는데 그토록 열심히 닦는 선생님은 처음 보았다고 하였다.

나의정성 덕분에 반 아이들이 밝고 명랑하게 자란다고 감사해하는 편지를 보면서 나는 그저 행복하였다.
 
이.어.서. (다음에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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