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하지만 따뜻한 색체의 세밀(細密)화가, 남성훈 작가의 그림책 「골목을 걷다」는 아이들의 놀이터, 노인들의 쉼터가 되고 장사꾼들의 가게 터가 되었던 골목길이 잊혀 가는 것에 대한 애틋함에 시작한다. 좁고 불편한 골목이 없어지는데 왜 애틋함이 생겨날까? 작가는 골목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 서로 감싸며 기댔던 가족들, 그때 나의 감성과 생각들이 그리워서일 것이라며 말한다.
그림책의 시작은 수업이 끝난 학교 앞 골목에서부터 시작한다. 학교 앞 골목에는 아이들의 영원한 방앗간, 문방구가 있고 가게 입구엔 각종 완구류와 불량식품이 주렁주렁 걸려있다. 과연 주인공은 한눈팔지 않고 집으로 곧장 갈 수 있을까?
문방구를 지나 옆 골목으로 걷다보면 동네 아주머니가 저녁에 먹을 콩나물을 사기 위해 소쿠리를 들고 삼거리 구멍가게로 간다. 고갯마루 첫 집 둘레에는 작은 꽃이 흐드러지게 펴있고 그 주위를 날아다니는 나비를 잡아보려고 애써본다. 옆 골목에선 할머니들이 자리를 깔고 옹기종기 모여 내기를 두고 있다. 또 걷다 보면 누군가 그려놓은 땅따먹기 선을 따라 리듬에 맞춰 앙감질을 한다.
슈퍼 앞을 지날 때에는 주머니 속 동전을 만지작만지작… 잠깐 고민하다 다시 걷는다. 구슬치기 하다 남은 깨진 구슬을 쳐다보며 주울까 말까 고민도 해 본다. 계단 길옆에 핀 빨간 사루비아 꽃을 따서 단물을 쪽쪽 빨아먹으며 계단을 팔짝 뛰어 내려간다. 바닥에 몽당연필이 떨어져 있으면 그 골목 담벼락은 아이의 캔버스가 된다. 그렇게 골목길을 걷다보면 집에 다다른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아이는 책가방만 집에 던져놓고 얼른 다시 골목길로 나선다. 아이에게 골목길은 곧 놀이터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발로 뛰며 취재한 골목길의 장면들을 보고 있자면 평화로움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림 한 장을 완성하는데 꼬박 보름이 소요된다고 하니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음미하듯이 자세히 들여다보며 빨랫줄에 널려있는 빨랫감의 종류라든지 할머니 다리 뒤에 숨어 볼일을 보고 있는 강아지를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