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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7년04월11일 00시0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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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적이지! 그래서 시인인거야!” 가난한 빈농의 아들, 스스로 “불효자”라 부르는 신광순 시인 인터뷰
“너무 시적이지! 그래서 시인인거야!” 가난한 빈농의 아들, 스스로 “불효자”라 부르는 신광순 시인 인터뷰

우리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에서 그 씨가 실제로 존재 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 말의 씨를 받아놨어 나쁜 말의 씨앗이 어떻게 생겼는지, 좋은 말의 씨앗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씨들을 보면 알수 있어 그 씨를 유리병에 담아놨으니까, 그 씨를 보면 깜짝 놀랄꺼야

살아오면서 내가 모르는 사람 가슴에 박은 못 내 부모 형제에게 박은 못 내 자식에게 박은 못 제일 크게 대못 질을 한 것은 나와 같이 사는 부인한테 대못질을 하면서 박은 못 그 못들의 씨앗 그 씨앗들을 다 받아놨다. 근데 가장 나쁜 짓을 한 것은 부모 자식간에 한 가슴에 박은 못, 그건 좋은게 아니더라구 근데 가장 큰 대못질은 역시 같이 사는 배우자 가슴에 박은 못이 평생 오래가는 못이더라구 너무 시적이지 이게 시인이야

기자가 시인을 글로 표현한다고 하는 것이 어디 가당치나 한 일인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고 견강부회(牽?附會)라 할 수 있다. 그래도 기자의 본분이 기사를 쓰는 일이라 용기를 내어 몇 자를 적어본다.

# 넝마지기 시인, 농업인, 대표이사, 박물관장 시인은 먼발치 경기북부도시 연천에서 6.25전쟁 휴전 바로 전, 가난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13세쯤 유년기를 보내고 부모님과 함께 안양으로 이주해 오면서 지금까지 53년을 고향으로 품고 살아왔다. 빈농의 아들은 망태기를 등에 짊어지고 한손에는 집게를 들고 돈이 될 만한 건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모두 망태기에 주워 담는 넝마지기로 가난을 극복해온 시절도 보냈다. 그러나 빈농의 아들이 거역할 수 없는 사명은 “흙과 시“ 인 것이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해 너무 감사해.. 세상이... 물론 열심히 살았지만 말이지 오늘도 어떤 사람이 회사에 와서 내손을 보고서는 ‘저게 회장 손이야’ 그러는 거야. 류마티즘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고 했지... 그럼 하루 18시간씩 손을 쓰는데..“ 류마티즘에 걸린 두 손은 이미 그 마디마디 색깔과 모양이 울부락불그락하다. 누가봐도 아름답지는 않은 손이다. 그러나 그 두 손을 통해서 만들어낸 세계는 가히 우주와도 같다.





최근에는 직접 30년 동안 기른 나무들과 돌들을 주워 나르고, 대리석을 세워 만든 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있다. ‘종자와 시인 박물관’ 이 그러하다. 지금까지 모아온 몇 십년 된 씨앗들을 보관 전시하고 시인으로 살아오면서 같은 문학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문학서적을 전시 할 수 있는 박물관을 손수 건축하고 있다. 개관은 4월 중순경으로 알려진다.

“나도 이제 노년이라면 뭐하지만 중년 이후에 계획을 세워서 내 나름데로 정리할 시기가 왔다 싶어서 스스로 직접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더 늦으면 내가 박물관도 못짓고 다 못할 거 같았다. 돈이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그래서 종자와 시인 박물관을 짓는 것이다.”

신광순 대표이사는 농업관수자재, 종자, 펠렛가공, 비료 등 농업관련 자재를 세계일류 제품으로 만들어 수출하는 등 한국농업의 새로운 발전에 공헌하고 있는 기업 ㈜신농을 이룩해 냈다.

이제는 “흙과 종자와 시“를 통해서 세상과 대화를 하고 있는 신광순 시인을 만나보았다.

Q. 종자와 시인 박물관 “내 이 두손으로 직접 지었다. 세미나실, 음향시설, 숙박시설, 나무, 돌, 풀... 모든 것을 직접 만들고 고르고 날랐다. 나무를 깍아서 서랍장도 만들었고 자연 대리석을 손수 골라서 옮겨 지었다. 이 박물관은 대리석으로 지은 건물이다. 갖고 있는 종자들과 문학인들의 작품집들을 보관 전시하고, 문학인들의 시비도 세울 것이다. 전시 진열공간이 360칸이 마련되는데 안양문인들을 위해서는 원하는데로 제공할 예정이다.“

Q. 시인, 시집 김대규 선생의 ‘사랑의 팡세’를 읽고 글쟁이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하는 시인은 1980년에 처음으로 첫시집 ‘코스모스를 위하여’를 출간했다. “그렇게 ‘코스모스를 위하여’ 시집을 출간했는데, 뭐 누구라고 말은 못하지만 몇몇 사람들에게 보여줬더니 ‘그걸 글이라고 썼냐고’ 그러는거야, 그래서 기분이 드럽게 나빠서 쌍개울가에 직접 망태기로 책을 짊어지고 가서 시집을 다 불질러 버렸어. 그래서 지금은 그 시집이 딱 한권만 남아 있어“

그러나 시인은 제8회 흙의 문학상 수상작인 ‘모든 게 거기 그대로 있었다’와 ‘하늘을 위하여’와 ‘땅을 위하여’, ‘생일 축하합니다’, ‘사람은 죽어서 기저귀를 남긴다’ 등 많은 시집과 저서를 통해 왕성한 작품 활동을 전개해 왔다. 특히 흙의 문학상 수상은 안양시에서 김대규 선생하고 신광순 시인이 몇 년 간격으로 수상했다는 상징적인 기록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1990년 안양지역 향토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시전문 무크지로 탄생한 ‘기호문학’ 의 발행인이 바로 신광순 시인이다.

Q. ‘중국 채근담’, ‘한국 불효자’ 이번 저서 ‘불효자’는 13세 때부터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내용들을 시인이 직접 메모 형식으로 기록해 놓은 메모지 등을 기본으로 해서 집필된 책이다. 390여편의 어머님 과의 기억이 올곶이 한권의 시집에 담겼다고 할 수 있다. (불효자는 잠언집으로 분류 할 수 있음)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밭에 김 매러 나가면서, 책장을 뜯어 젖가슴에 꽂고 나가시곤 하셨습니다. 쉴 참이면 그것을 꺼내 읽으셨고, 가끔은 저에게 그것을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저녁에 집에 들어오셔서는 이밥도 아닌 보리밥알로 그 책장을 다시 붙여 놓으시곤 하셨습니다.‘ “지금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 치매가 깊어져서 지금은 얘기가 안통해, 이제는 대화의 상대자가 아니라 내가 보호자로서 어떻게 하면 어머니가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지켜줄까 하는 염려하는 그런 어머니로 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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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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