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집을 나왔다. 갈 곳이 없었고 좁고 어두운 길을 따라 언덕길을 올라가 보니 어둠 한가운데 노란 불빛이 등대처럼 반짝이는 곳이 있었다. 연우는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가 들리고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이끄는 “한밤중 달빛 식당”을 방문하게 된다. 나쁜 기억을 제공하면 생크림 케이크와 진한 초코시럽을 가득 얹은 커스터드 푸딩을 먹을 수 있는 곳….연우는 학교에서 친구와 겪었던 나쁜 기억, 엄마가 돌아가셨던 불행한 시간을 기억에서 지우고자 음식을 먹지만, 나쁜 기억이 사라진 시간이 그리 행복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달빛 식당은 엄마 품처럼 따뜻했고, 엄마가 죽은 후 매일 밤을 술로 지새우는 아빠와 함께 사는 집보다 안락한 장소였다. 마음이 지친 연우는 낮에 학교에서 동호의 돈을 주워 실내화와 학용품을 산 기억과 잊고 싶은 나쁜 기억 두 가지를 지불하고 케이크와 푸딩을 먹게 된다. 이렇게 나쁜 기억이 사라지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아내의 죽음으로 청국장을 사 먹은 아저씨가 다음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여전히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뭔가 잘못되었음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나쁜 기억이 없어지면 행복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아저씨 너무 슬퍼 보였어요...(p.48)” 나쁜 기억의 물음에 대한 여우의 대답에 더 이상 주문을 하지 못하고 달아나듯 뛰쳐나온 연우는 달빛 식당에 지불했던 가슴 아픈 두 가지 기억, 흔적조차 사라진 엄마와의 기억을 되찾고 싶어졌다. 연우는 기억을 돌려받으면 힘들고 슬퍼질 수도 있고, 다시는 식당에 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연우는 슬프고도 속상했던 엄마의 죽음과 친구 동호에게 잘못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기억을 되돌려 받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나쁜 기억이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쁜 기억을 지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주인공의 이야기처럼 나쁜 기억조차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또 한 번 성숙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삶에서 만나는 슬프고 힘든 기억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이분희 2017년 『한밤중 달빛 식당』으로 제7회 비룡소 문학상 대상을, 『신통방통 홈쇼핑』으로 제24회 황금도깨비상 우수상을 받았다. <저작권자 ⓒ 안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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