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명은 해방의 첫단계다.” (p.9) 독일의 설화에는 ‘룸펠슈틸츠헨’이라는 심술궂은 난쟁이가 등장한다. 난쟁이는 방앗간 주인의 딸을 곤경에서 구해주며 그 때마다 대가를 요구한다. 난쟁이가 최후로 요구한 대가는 그녀의 아기이며, 난쟁이는 자신의 이름을 알아맞히지 못하면 아기를 데려가 버린다고 협박한다. 그러나 여자는 결국 난쟁이의 이름을 알아내고 난쟁이 룸펠슈틸츠헨은 크게 화를 내며 스스로를 파괴하고 사라진다. 리베카 솔닛의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는 사회적 현상을 정확한 용어로 명명하는 것의 중요함을 역설하는 책이다. 무언가를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숨겨져 있던 본질을 폭로하거나, 중요성과 가능성을 발견하는 행위이다. 솔닛은 이미 ‘맨스플레인mansplain’ 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남성들이 여성 앞에서 잘난 척하며 설명하는 행위’를 비판의 대상으로 가시화하는 데 성공한 경험이 있다. 이 책은 2010년대 중후반 솔닛이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사회비평서로 여성혐오, 기후변화, 젠트리피케이션, 국가폭력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미국 내의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국에 사는 우리와도 연관돼 있다. 우리는 ‘하비 와인스틴’ 성추행 사건에서 우리나라의 ‘미투’ 운동을 떠올리고,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을 보면서도 국내의 어떤 사람들을 떠올린다. 특히 거대한 의분(義憤)을 동력 삼아 사회를 바꾸는 데에 익숙한 한국의 국민으로서 ‘분노’에 대한 고찰은 주목할 만하다. 솔닛은 분노라는 감정이 때로는 사람들을 지치고 눈멀게 한다고 지적하며, 분노를 터뜨리는 것을 넘어 실제적 변화를 위해 장기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솔닛은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시민들이 그들의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것에 기뻐한다. 트럼프에 분노하는 시민들은 시위에 참여하고, 행진하고, 파업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메시지는 다시 ‘언어’로 돌아온다. 솔닛은 기존에 작성된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지 말고 깨 버리라고 말한다. 기성 체제를 강화하는 이야기를 멈추고, 사회의 약자와 시민들을 대변하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새로 지으라고 말하며 책은 끝을 맺는다. <저작권자 ⓒ 안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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