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안양시민도 모르는 안양의 역사와 문화 4안양 8경으로 꼽힌 명소, 수리산 성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기초단체급의 지방 정부에는 시ㆍ군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기위해 공식적인 명소로 꼽는 곳을 지정하고, 특별히 관리한다. 기초단체의 규모와 위치에 따라 명소라고 꼽을 만한 곳이 다를 텐데도 대부분 관행적으로 ‘8경’을 기준으로 둔다. 이런 관행은 조선시대 8도에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을 하나씩 꼽은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과거에는 6경, 8경, 10경, 12경 등의 표현이 고루 쓰이다가 중국의 ‘소상8경瀟湘八景’부터 8경이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한국민속대백과에 따르면, 소상 8경은 우리나라에서는 판소리 심청가의 주요 대목의 하나이자, 가야금병창과 단가로도 불리고 있는데,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 의하면 헌종·철종·고종 때 활동했다고 전해지는 정춘풍에 의해 단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소상8경은 중국의 명승지인 후난 성 동정호 남쪽 언덕 양자강 중류에는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의 물이 합쳐지는 동정호의 경치가 아름다워 송나라 시대 이성李成이란 화가가 ‘소상8경도瀟湘八景圖’라는 이름으로 이 자연 풍광을 화폭에 담은 것에서 유래했다. 이 그림에는 그곳의 여덟 가지 각각 다른 사계절의 경치가 담겨져 있다.
안양시도 이와 같은 관행을 따라 안양 8경을 꼽았는데, 시간의 흐름과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명소가 있는가하면 변함없이 8경안에 드는 곳도 있다. 2020년 현재 안양8경은 망해암 일몰, 삼막사 남녀근석, 평촌중앙공원, 만안교, 수리산성지, 안양예술공원, 병목안 산림욕장 석탑, 안양 1번가 순서로 1경부터 8경까지 지정되어 있다.
이중에 수리산성지는 이례적으로 종교의 성지가 8경 중 하나로 지정된 곳인데, 그만큼 특별한 유례가 있다. 수리산성지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 9동 1151-2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수의 고행을 상징하는 동상들과 함께 최경환 성인의 무덤이 있다.
최경환(프란치스코 1805~1839) 성인은 김대건 신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신부가 된 최양업(토마스 1821~1861)의 아버지로, 본래 충남 청양군 화성면이 고향이나 부인 이성례(마리아 1800~1840)와 담배촌(안양9동)에 정착해 교우촌을 이루고 천주 신앙을 전파했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로 천주교인들이 순교하자 한양을 오가며 순교자들의 유해를 거두어 안장하고, 불안해하는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돌보다가 그 역시 그 해 7월 31일 서울에서 내려 온 포졸들에게 압송된다.
서울로 압송된 최경환 성인은 종교를 버리라는 모진 고문과 회유에 흔들리지 않고 신앙을 고수하다가 그해 9월 12일 포청옥에서 순교했다. 함께 잡혀온 40여명의 신도들은 모두 배교의 서약을 하고 목숨을 부지했으나 최경환 성인은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최경환 성인의 부인 이성례 마리아 역시 그 이듬해 1월 31일 용산 당고개에서 참수됐고, 최경환의 시신은 담배촌에 묻혔다가 명동성당으로 천묘 후 다시 양화진 성당으로 옮겨졌다고 전해진다. 최경환 성인은 일제 강점기인 1925년 7월 5일에 이르러서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84년 5월 6일에 성인聖人으로 추대된다. 부인 이성례 마리아 역시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됐다.
수리산성지는 2000년에 순례지로 지정되면서 새롭게 문을 열었고, 시청 자료에 따르면 매년 3만여 명의 교인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대부분의 종교적 성지에는 종교인으로서 걸어야할 고행의 길을 뜻하는 험로가 존재한다. 이 수리산성지도 마찬가지로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 약 15분에서 20분 정도의 산행을 해야 최경환 프란치스코의 가묘까지 도달할 수 있다. 묘역에 도달하는 길에는 예수의 고행을 표현한 동상이 여럿 세워져 있는데, 이 동상을 따라 산을 오르다보면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고행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 수리산성지는 원래 ‘최경환 고택지’, 혹은 ‘최경환 성지’로 불렸는데, 수리산성지로 공식명칭을 정하고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찾아올 수 있도록 대중화했다. 이는 특정 인물에 집중하기보다 천주교 박해의 역사를 담은 의미를 살리기 위한 조치였다. 이곳은 깊은 산중이 아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비롯하여, 19세기 고택의 원형을 볼 수 있는 최경환 고택의 모습 등의 볼거리가 있으며, 순례자 성당의 모습도 사진에 담을만하다.
경기도의 계곡 정비 사업에 따라 계곡을 덮는 형태로 설치되어 있던 간이음식점들이 사라져 더욱 아름다운 경치를 확인할 수 있고, 무료로 운영되는 공용 주차장 시설이 갖춰져 있어 잠시 찾아서 숭고한 희생정신을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필자처럼 종교가 없는 사람도 간단한 등산 겸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숙연한 마음이 드는데, 신자들의 경외심은 얼마나 클지 짐작할 수 있다. 만안교와 더불어 조선시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유적으로 찾아보기도 나쁘지 않겠다. <저작권자 ⓒ 안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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