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고향 나들이, 황금물결 들판이 반겼다. 우순풍조 시화년풍 雨順風調 時和年豊의 해다. 농자 천하지 대본 農者天下之大本 깃발에 풍년가를 울릴만도 하다. 4대강 사업으로 농업용수가 충분하여 '천수답 天水畓,이란 말은 사전에만 남아있고, 경지정리 사업으로 조성된 농로로 트럭타, 콤바인 등 대형 농기계가 활보하니 경운기는 울타리 밑에서 졸고 있다. 여기에 품종개량 등 농업기술 발달로 쌀 생산량이 점점 늘어 매년 벼 저장고 부족을 고민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40여년 전 까지만 하여도 보리고개를 넘어야 하였는바 그 고개가 얼마나 높은지 시인 황금찬 (강원 속초)은 "보리고개 밑에서 아이가 울고 있다. 할아버지가 울고 있다.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9,000m" 라고 읋었으니, 히말라야 산맥중에 있는 어느 산 보다도 더 높다는 의미인 듯 하다. 쌀 부족 현상은 우리나라만이 아니고 세계인구의 60%가 사는 아시아의 과제였다. 1997.2.19 사망한 중국 지도자 등소평 鄧小平도 식량 자급을 언급한 바 있다. 곧 그의 연설 “검은 고양이이거나 횐 고양이이거나 쥐만 잘 잡으면 된다, 중국 인민도 식사 때 술 한잔에 과일 한 조각을 곁들여 먹을 수 있어야 한다”이다. 14억 인구의 먹는 문제를 해결한 지도자이다. 우리나라는 1961년 5.16 혁명 후 곧 경제개발에 주력하여 공업화 기반을 구축하고 소득 향상과 경제 성장을 이루어 갔으나 도,농간의 소득 격차 심화로 주택과 학교, 도로, 상하수도 등 사회간접 자본 부족 하에 도시화가 진행되어 한때 문제가 된 때도 있었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에 의하여 1970년 새마을 운동이 제창되어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외침하에 농촌 소득 증대사업이 전국적으로 진행되었다. 이중에서도 식량증산에 치중하였으니 곧 <쌀3,000만석 돌파>운동이다. 우리국민의 1년 양식이 곧 이 숫자인 것이다. 과제명도 강력한 추진력을 뜻하는 돌파 突破이니 쳐들어가서 기어코 깨뜨려야 한다였다. 쌀 자급자족이 얼마나 절실한 과제였으면 시,도지사, 시장, 군수를 비롯한 공무원들이 새벽부터 마을을 찾아 농민들과 함께 일하였고 동네 스피커에서는 5시부터 새마을 노래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가 울렸다. 박 대통령께서는 권농일 행사에 참여하여 모내기를 하고 논두렁에서 농민들과 어울려 막걸리 잔을 기울림으로 농군들에게 힘을 넣어 주었다. 필자는 그때 모내기 논에 뱀의 접근이 우려되어 논두렁에 '백반'을 뿌리는 작은 일을 하였는데 그것을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쌀이 남아 돌고 있다. 우리민족이 보리고개를 넘는데 5천년이 걸렸다. 곧 햅쌀밥이 상에 오를 것이다. 쌀 rice이 nice 이다. 오늘도 시민들의 행진에 청신호가 켜 지기를 기도합니다. <저작권자 ⓒ 안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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