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 순간의 떨림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전율됐다. 당선연락을 받고 나서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지 못함과 ‘당선’이라는 환청을 들은 것처럼 사라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당선 확인 전화를 다시 걸어보지 못했다.
10년 동안 두드려온 신춘문예의 문(門)을 지금껏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나이질거야, 좋아질거야. 언젠가는 눈물을 뛰어넘는, 눈물보다 더 맑은 경지의 서정시를 꼭 쓰고 말거야’ 라고 줄기차게 이야기 해 온 독백과 같은 사랑의 속삭임 때문이었으리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과 가정과 마을과 향토, 나라와 그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민족적 애환(哀歡)과 눈물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 2018년 1월 안양문인협회 신준희 작가가 초대형 경사(慶事)를 만들어 냈다. 보통 ‘일냈다’고도 표현한다. 2018년도 동아신춘문예에 신준희 작가의 ‘이중섭의 팔레트’ 작품이 시조부분에서 당당히 당선되었다.
신춘문예는 문학가로 등단하고자 하는 지망생들이 보통 일간지 신문사에 작품을 공모출품하고 권위 있는 심사위원들에 의해서 가장 우수한 작품 한편이 당선작으로 결정되는 절차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신춘문예 절차를 통해서 당선작을 출품한 지망생은 드디어 신인문학가로서 문단에 등단이 된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앙일보 신춘문예, 조선일보 신춘문예,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 많은 신춘문예가 있다. 특히 동아일보는 1920년대부터 신춘문예를 처음 도입해서 황순원 작가를 비롯해서 수많은 주옥같은 문학 작가들을 배출했으며, 문청들이 평소에 갈고 닦은 자기 작품을 공정하게 심사를 받아 볼 수 있는 기회로서 문청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서고 싶어 하는 문예이다.
얼마 전 안양시가 인문교육특구 지정을 축하하며 개최한 ‘인문교육특구 지정 선포식’에 걸맞게 안양시의 인문학적 위상과 안양문인, 안양문학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일대 변혁의 커다란 사건임에 틀림없다. 이중섭의 팔레트 - 신준희
알코올이 이끄는 데로 너무 멀리 와버렸다
내려야 할 정거장을 나는 자주 까먹었다
날마다 다닌 이 길은
처음 보는 사막이었다
## 당선소감 이곳 문인협회 사무실에는 뭔가 아주 좋은 기(氣)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큰길 건너편에 있는 빠알간 우체통을 돌아 나오는 우체국의 정겨움이 있고 10년 동안 매년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는 직원들의 따스함이 있습니다.
그렇게 10년동안 매년 열심히 응모를 했는데 작품이 늘 미진해서 낙선의 고배를 마실 때마다 제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작년보다는 나았어, 한작품씩 한작품씩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라면서 혼자서 마음을 추스렸어요.
때론 신춘문예를 내가 왜 해야 하나 실망도 하고 마음아파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에도 “오래된 나무도 새 잎을 항상 틔운다”는 말을 부여잡고 버티며 끝까지 도전을 해서 늦었지만 늦은 데로 당당하게 당선을 하니까 이제는 정말 신춘문예 심사위원들께서 인정을 해 주신 만큼 한번 더 열심히 글을 써내려가야 겠다는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이중섭의 팔레트 그림은 못합니다. 가끔 마음이 울적하고 안좋을 때 덕수궁을 가는데 갈 때 마다 느끼는 것은 광화문 시청 앞 광장은 자동차들로 넘쳐나고 고층 건물들로 뒤덮여 압도되는 곳이지만 백년 전만 해도 우리 민족이 나라 잃은 슬픔과 억압 속에서 하얀 소복을 입고 눈물로 지나가던 길이라는 역사적인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저도 마음이 허전하고 나약함이 느껴질 때 시청 앞 길을 걷곤 하는데, 마침 작년에 이중섭 백주년 기념전시회가 덕수궁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전시회를 들어서며 마주친 이중섭 작가의 커다란 팔레트가 마음에 턱 걸리더라구요. “그래 이 팔레트구나. 이중섭 선생님도 이 팔레트에 자신을 다 바쳤구나. 자기 작품에 순교한 작가의 정신을 배워야 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작품 옆에 붙어 있던 이중섭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화가이면서 글을 사랑해서 글을 남기셨구나. 나도 작가지만 그림으로 이걸 어떤 면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죠. 그 뒤로 계속 이중섭 선생님이 몸부림 치고 싸웠을 그 팔레트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가만히 앉아 있다가 막막해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한 줄을 썼습니다.
“알코올이 이끄는 데로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 한줄을 쓰고 나서 제가 울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또 한줄을 보탰습니다. “내려야 할 정거장을 나는 자주 까먹었다“ 마지막 구절들도 몇 주가 지나서 한줄씩 써 내려 갔습니다. 누가 볼 때 “이게 무슨 뜻이야?” 묻지만 저는 이 작품이 마냥 좋았습니다.
## 스마트폰중독, 게임중독, 인터넷중독 학생들이 매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분명히 다양합니다. 매체에서도 분명히 얻어야 할 것이 있는 것이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균형의 문제 같다고 할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매체에서 너희들이 얻어야 할 것은 얻어라. 그래야 미래를 향해 더 나아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빠져서는 안된다”라고 분명히 말을 해야 합니다. 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학도 분명히 뿌리 깊은 문학의 역사 줄을 타고 문학과 인쇄 매체를 통해서도 배울 것도 많이 있다는 점을 계속해서 알려야 합니다.
## 계획의 일부 앞으로 커다랗게는 자라나는 청소년 아이들이 마음이 순화 될 수 있는 기도 같은 시를 꼭 써보고 싶습니다. 이런 글을 쓰는 작업은 어려운 작업이죠. 저의 고통이나 견딘 상처나 그것이 다시 어떻게 될 거라는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 그 희망까지는 아닌 사람이라 할 지라도 제가 처음에 받은 순결 같은 숨결 같은 정말 눈물을 넘어선 서정적인 시를 꼭 쓰고 싶습니다. 눈물보다 더 맑은 경지가 있는 그런 서정시를 쓰고 꼭 쓰고 싶어요.
## 안양시민들, 문인회원들 안양에 제가 오랫동안 사니까 제 몸에 안양이 다 들어 있어요. 내 향토가 소중다는 것을 우리가 지켜내야 서로 반듯하게 교류가 될 수 있고, 다른 문학적인 일이나 모든 살아가는 인생의 커다란 길에서 내 향토, 내 집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겠구나, 헌신해야 겠구나 하는 정신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안양 문인협회 사무실에 자주 옵니다. 장호수 국장과 박인옥 회장님을 오며가며 얼굴을 뵙는데 그 때문에 일부러 옵니다. 이 장소를 일주일에 한 두번 와서 앉아 있다가 내 고충이나 고민을 상담하면 격려도 받고 힘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집에 가서 또 열심히 글을 씁니다. 그 힘이 참 중요한 거 같아요.
안양문인협회와 글길문학동인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비록 한 달에 한번 목요일 날 만나는 모임이지만 그 모임을 결석 안하고 꾸준히 나왔습니다. 그 힘으로 오늘 이 자리에 선 거 같아요. 그리고 가는 자리마다 꼭 배울점이 많아요. 항상 부족하고 빈틈 투성인데 열심히 하고 또 열심히 쓸겁니다.
항상 도움을 주셨던 문우님들, 박공수 시인, 장호수 국장, 박인옥 회장님, 사랑하는 김대규 선생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소망합니다. 저도 열심히 글 쓰고 좋은 소식들 많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평>> - 이우걸, 이근배 시조시인 이중섭이란 이름은 낯설지 않다. 오히려 소재로는 식상하다. 그러나 화가의 아내가 서귀포시에 기증한 팔레트에는 아직도 물기가 마르지 않아서 이렇게 섬뜩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놓았다. 알코올이 환기하는 정상적이지 않은 삶, 정거장이 은유하는 생의 여러 고비들을 어느날 이중섭은 사막처럼 느꼈을까. 이러한 상상은 화자 한 사람만의 자의적인 해석이 아니라 가파른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공감 할 수 있는 체험의 풍경이다. ‘날마다/다닌 이 길은//처음 보는 사막이었다’의 극적인 비약은 알마간의 난해성이 시의 매력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절창이 아닐 수 없다.
“거울 속에 비추어진 한떨기 장미꽃에 촉촉이 젖어 있는 함초롬한 이슬 한방울은 삶이 겨워 떨구어진 영롱한 눈물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