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신문=임칠호 논설위원] 우리 안양에는 안양 발전의 밑거름으로 자랑할 분들이 많다. 오늘은 그중에 소리없이 일하신 한분의 삶을 보려고한다. 의사이며 초대 안양읍의원이신 故 이형래씨이다. 1906년 수원에서 태어나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하고 산간 벽지인 함경남도 정평과 신창군 공의(公醫?)로 12년간 봉직하다 해방 후 월남, 안양에서 삼성 병원을 개원 , 가난한 환자들을 살피던 중 1952년 초대 안양읍 의원에 당선되어 전후 안양시 복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의사가 귀한시절 인데 왜 함경도까지 갔느냐고 물었더니 "어느날 대학병원에서 당직근무를 하고 있는데 축구공처럼 퉁퉁 부어오른 젖가슴을 움켜쥐고 찾아온 환자가 있어 정성껏 치료한 후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리하였더니, 정평에서 밤새 기차를 타고 왔다면서 우리 함경도에는 병원이 한군데도 없습니다. 우리같은 산골에 오실 의사선생님은 어디 없나요?" 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어디없나요"라는 말이 낚시가 되어 수련의 과정을 마친 후 망설임 없이 정평을 택하였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시절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장기려 박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그분의 인격을 많이 배웠다고 하였다. 환자가 던진 "어디없나요?"는 평생 귓전을 맴돌아 어려운 일이 있을때 마다 스스로의 버팀목이 되었다. 평생을 환자와 함께하며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는 아무리 먼 곳이어도 뛰어나갔다고 한다. 당시 안양지역 환자들 중에는 산모가 많아서 왕진이 잦았는데, 왕진을 하며 사용한 자전거만 해도 10여대 넘는다고 하였다. 그분은 병원업무 뿐만 아니라 사재를 들여 유치원 설립, 장학사업, 극빈자 묘지마련 등을 하다 2000.9.28 ㅡ95세를 일기로 시민의곁을 떠났다. 한겨울의 눈 쌓인 푸른 대나무는 추운 시기에도 그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어려웠던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이익보다는 환자들의 아픔을 함께 나눴던 안양의 간디 설죽(雪竹)이형래 ㅡ 안양을 무척 사랑한 사람이다. <저작권자 ⓒ 안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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