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신문

호랑이와 싸운왕 태종

임칠호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0/03/11 [06:46]

호랑이와 싸운왕 태종

임칠호 논설위원 | 입력 : 2020/03/11 [06:46]
호랑이와 싸운왕 태종

지금 온 국민은 우완 폐렴과 싸우고 있지만 600여년전 조선 초기에는 온 국민이 호랑이와 싸웠다고 하여도 모순된 말은 아닐 것 같다.

당시 겨울철 옷감과 이불솜은 양잠으로 얻어지는 명주였는데 질은 좋지만 생산량은 턱없이 부족하여 백성들이 엄동설한을 지내는 데는 고통이 심하였다고 한다.

이에 나라에서 장려한 것이 목화 재배였으니, 따뜻하고 폭신한 감촉을 가진 목화솜은 노력만하면 단 기간내에 다량으로 얻을 수 있어 생활 필수요건인 의,식,주 중의 하나인 <의 의 혁명 衣 革命>이 아닐 수 없었다고 보아진다.

주민들은 날만 새면 너도나도 목화씨를 파종하려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 화전火田을 일궜다.기존의 밭에는 식량작물과 채소를 심고 개간한 땅에는 목화씨를 파종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밭을 개간하는 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나면서 호랑이 들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산속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져 호랑이들에게 노출되었고, 잡목을 태우려고 불을 피움에 따라 불꽃과 연기에 놀란 호랑이 들이 발작하였다고 보아진다.

이로 인하여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사람이 곳곳에서 늘어났으며 이 사실은 행정계통을 통하여 속속히 태종에게 보고 되었다.

이시기에 가장 무서운 것이 호랑이였다.

우는 아이도 "저기 호랑이 온다“ 고 하면 그치고, 욕辱중 에서도 가장 심한 욕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을 놈"이란 말도 이때 생겨났다고 한다.

김동진의 <조선의 생태 환경사>를 보면 이조 3대왕 태종 (이방원 李芳遠)은 1402년 지방 수령들에게 명命을 내리기를 "백성들이 호랑이에게 화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였으며 그리고 국가에서 착호갑사 捉虎甲士라는 호랑이 잡는 전문 군사를 양성하여 이 일에 투입하였다고 기록 되어있다.

밭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백성들은 지켜준 왕 태종을 호랑이와 싸운 왕 이라고 칭하여도 좋을듯하다.

우한 폐렴을 잡는 일에 불철주야 수고하는 착염갑사捉炎甲士 의료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안양 시민들의 행진에 청신호가 켜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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