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직 근로자들이 일감을 찾기 위해 새벽부터 인력시장에 줄서있다. 경제가 계속 어렵게 오다가 우한 폐렴까지 겹쳐 수십년간 운영하던 사업장의 문을 닫고 나온 아버지들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커녕 마스크 한장에 생명을 걸고 난달에 서있다. 버스 승객들이 보기 민망하여 고개를 돌려준다. 이것이 오늘날 직업을 잃은 아버지들의 현주소다.
지난 1998년 IMF경제 위기때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지금은 없어진 업종이 하나있다. 곧 등산복 대여점이다. 서울 근교 관악,청계,북한산 등산로 입구에 있던 간이점포이다. 여기에 출근복을 맡기고 하루 종일 산에서 지내다가 퇴근 시간에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귀가하는 아버지들의 애잔한 모습이었다. 날씨가 풀리면서 이런 일이 또 발생할까 두렵기만 하다.?
1992년 영국의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 荒蕪地 the waste land 가 떠오른다. 세계 제 1차 대전후 황폐된 유럽을 보면서 <4월은 잔인한 달> 이라고 한 말이 지금 우리를 두고 하는것 같다. 거리에 가득한 꽃들을 보는 것 까지도 사치로 느껴진다. 아버지들의 평소 생활을 깊이 있게 살펴보면 여유 있는 것만은 결코 아니다. 가족에게 우울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할 따름이다. 직장에서는 상사와 수하 직원들 사이에 끼어 있어 위 아래의 눈치를 보며 지내고, 주말에는 경조사를 비롯한 사회적 의무 이행에 힘겹다. 시간적, 경제적, 건강적으로 현상 유지하기에 바쁜 세대이다.
아버지들은 그런 중에도 가족에 대한 책임감만은 매우 높아 자기보다 가족을 먼저 챙긴다. 자기 물건을 구입할 때는 중고 가게 문을 여 닫지만 가족들 것은 메이커를 찾는다. 적금을 해지하고 주머니를 털어 가족 앞에 내어 놓는다. 아버지들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뎌서 가족을 사랑한다. 아버지는 마을 입구에 서있는 정자나무 같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앞산에 박혀있는 바위 같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마을 앞을 흐르는 개천과 같은 사람이다. 변함이 없어서이다. 가정은 아버지들을 어루만져야 한다. 마모되고 멸시받는 육체와 인격을 재생시킬 수 있는 곳은 오직 따뜻한 가정뿐이다. 자녀들의 부족한 성적표도 칭찬거리를 준비하고 조심스럽게 펼쳐보는 아버지, 아끼지 않고 남기지 않고 나눠주기를 즐기는 아버지들의 혈액형은 아카페 O형입니다. 잔인한 달 4월을 이겨 내는데 진력한 아버지들 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도 안양 시민들의 행진에 청신호가 켜지기를 기도합니다.? <저작권자 ⓒ 안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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