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늄 광석에서 찾아 낸 방사선 원소 라듐 radum 을 최초로 발견한 과학자를 우리는 퀴리 부인(Marie Curie 1867~1934) 이라 부를 뿐 Marie 라고 불러 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폴란드 태생으로 10세때 어머니를 잃고 외롭게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침착한 여성으로 피에르 퀴리(Pierre Curie 1859~1906)와 결혼 후 우라늄에 대하여 부부 공동 연구로 마침내 라듐을 발견해 1903년 최초로 부부 공동 노벨 물리학 상을 수상 하였다. 남편이 파리대학 이학부 교수 재직 중 낙마落馬로 갑자기 사망 함에 따라 그 뒤를 이어 교수가 되고 남편의 강의 노트를 들고 남편의 강좌를 이어갔다. 그런데 강의 실력이 남편과 다를 바 없어 개강 첫날 프랑스의 모든 언론이 일제이 < 아무일도 없었던것 처럼>이란 제하로 논평 하였음은 지금껏 학계에 남아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10년 간의 짧은 결혼 생활의 슬픔을 딛고 단독 연구로 1911년 노벨 화학상을 받아 노벨상 2회 수상 기록을 세운 영원한 과학도는 세상에 자기 이름 마리 Marie 를 내 세우지 않고 남편의 부인 마리 (Marie Curie) 로서 행복 하였다고 회고 하였다. 당시 폴란드는 법으로 여성의 대학 진학이 허용되지 않아 마리는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는 프랑스로 왔다. 결혼 생활이 겨우 10년간 이었지만 학문 연구의 동지 ?부부는 전무 후무한 부부 공동노벨 문리학 상을 수상하였다. 남편의 급 사망 후 그 강단을 이어 가므로써 둘이 하나 (2=1) 되는 자랑스러운 부부상을 보여 주었다. 태풍을 막아 잔잔한 호수를 지켜낸 사람, 자기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은 사람을 보았다. 반면에 매일 자기 이름을 신문 지면에 도배하고있는 사람들, 국민들의 정서에서 먼 거리에 있으면서도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다가 아니면 말구로 끝 내는 이상한 사람들이여! 내 이름이 그렇게도 중한가? 바위에 새겨놓은 독재자의 이름을 보고도 식상食傷하지 않았는가? 지구는 이름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오늘도 돌고있다. 아침 햇살은 그들의 얼굴을 빨리보려고 일찍 솟아 오른다. 자유와 권리리를 유보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 하는 사람들이 역사를 빚고 있다. <아무일도 없었던것 처럼>살아가는 이름없는 사람들의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안양 시민들의 행진에 청신호가 켜지기를 기도합니다. <저작권자 ⓒ 안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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