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한분이 전동차 창가에 자리하고 밖을 즐기고 있다. 종착역 즈음에 옆자리 승객이 "어르신 어느 역에서 내리십니까?" "시원한 풀밭이 있는 우리집에 내리려 해". 황야의 흙 먼지를 일으키며 말을 달리던 인디언이 갑자기 길을 멈추고 달려온 쪽을 돌아 보며 멀거니 서 있는 그림이 있다. 너무 빨리 달려서 미처 따라 오지 못하는 자신의 영혼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빨리 달린다. 아나로그 analogue 시대에서 디지털 digital 시대로 거기서 인공지능 AI 시대로 달리고 있다. 우주 정거장에서 1년 이상 생활하고 있는 우주인도 여럿있다. 이제 우주여행도 마이카 시대처럼 성큼 다가올 것 같다. 그간 선진국을 설명할 때 화두 話頭였던 고령사회에 와 있다. 이 시대를 살아 가고 있는 노년의 화제는 어떤 모습으로 살다가 시원한 풀밭이 있는 우리 집에서 여생을 마칠 수 있느냐이다. 이에 대한 답으로는 일찌기 유학儒學?에서 제시한 다섯가지 복 福 - 수, 부, 강령, 유호덕, 고종명 壽 富 康寧 攸好德 考終命을 대입하여 보았으면 한다. 즉 건강한 심신으로 장수하되 경제적 어려움이 없고 선행을 덕으로 여겨 살다가 편한 죽음을 맞는 것이다. 말로는 쉬우나 결코 쉬운 명제가 아니다. 의지와 노력 주위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는 이뤄질 수 있겠으나 고종명 考終命에 자신하는 사람이 있는가? <시원한 풀밭이 있는 우리집> 생활을 바라지만 시원찮은 풀밭도 시야에 자주 들어온다. 편안한 죽음은 다만 삶의 변화 일 뿐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대한민국 노인 자살률은 13년간 OECD 국가에서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훼몰아 치는 삶의 무게를 지탱하기 힘든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사건, 사고, 재난, 전염병 등으로 편안한 죽음, 즉 고종명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있어서이다. 아침에 출근한 수산직 공무원이 적에 살해되어 재 한줌도 돌아올 가망이 없다고 한다. 금년은 9.11테러 참사 19주년의 해이다. 세계 최강국 미국에서 이런 끔직한 일이 발생했다. 사망자 2,977명의 고종명을 설명할 언어가 있는가? 우리는 우한 폐렴 바이러스에 고종명이 보장되지 않은 “한번도 경험하여 보지 못한 시국”을 살아 가고 있다. 증자曾子는 "새는 죽음에 임하면 그 울음소리가 애처롭고 사람은 그 말이 선하다"고 하였다. 권력을 쥐락 펴락하던 자들이 최소한의 품격인 이름값, 얼굴값도 팽개치고 한뼘 인생 허무인생을 인명 경시로 표시했다. 선으로 마음을 닦는 오늘의 삶이 되었으면 한다. "테스형 세상 왜이래?" 어느 가수의 노래만은 아닌 것 같다. 오늘도 안양 시민들의 행진에 청신호가 켜 지기를 기도합니다. <저작권자 ⓒ 안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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