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신문

春子, 이름처럼 다시 찾아온 봄 날, ‘박춘자 어르신’

어르신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

한만정 기자 | 기사입력 2020/12/14 [06:35]

春子, 이름처럼 다시 찾아온 봄 날, ‘박춘자 어르신’

어르신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
한만정 기자 | 입력 : 2020/12/14 [06:35]
박춘자 어르신

열두 살 언니 시집가는 날 곡소리 내며 꺼이꺼이 울어보셨단다. 같이 놀던 열다섯 살 언니가 시집을 가는 날 이었다고. 부모님이 안 계셔서 작은 어머니 품에서 자라던 어르신께 언니가 시집가는 날은 하늘이 무너지는 날이었다.

한 많은 세월을 살아오셨지만 인정 넘치고 구수한 입담에 흠뻑 빠졌다.

언니도 겨우 15살 갈래머리 계집애였어. 기쁜 날에 난 천애고아가 된 거 같아 뒤꼍 담장아래서 쪼그리고 앉아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지. 언니는 秋子 나는 春子. 부모님은 두 자매만 남겨놓으셨고 우린 부모님 대신 작은 어머니 품에서 자라고 있었어. 그래서 엄마처럼 의지하던 언니의 빈자리는 너무 컸어.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열여섯 살에 시집을 갔어. 내가 시집 간 그 해에 흉년이 들어 입하나 덜겠다고 꽃다운 나이 열여섯에 시집을 갔지. 아버님은 일본에 가셨다가 내가 엄마 젖을 겨우 뗄 무렵 돌아가셔서 아버지의 얼굴은 마음으로도 그릴 수 없었어. 개가한 어머니의 빈자리를 작은 어머니가 매워주셨지. 언니와 나는 그래서 더 살가운 자매였어. 둘이 손 꼭 잡고 들로 산으로 다녔고 한창 쌍둥이처럼 다니던 그 때 언니는 울면서 시집을 갔지 뭐야.

우리 고향 청성면 능월리에 아직 살고 계신 우리 추자 언니는 여든 다섯 살이야. 아들 여섯 딸 하나 7남매 그 아들들을 대학까지 가르치느라 너무 고생해서 다리가 아파서 집에만 계셔. 둘째 아들내외가 모시는데 이젠 잘 걷지를 못해. 나도 버스를 갈아타면서 언니를 보고오자면 버스에서 오르락내리락 이젠 힘이 부쳐. 그래서 우리 막내 선호가 다니러 온다면 더 반가워. 선호가 마음 씀씀이가 다정해서

“ 어머니 이모 살아계실 때 얼굴 한 번 이라도 더 보시게 이모네 가셔요”

혼자서 언니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 보다 아들이 태워주는 차로 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이 흐뭇한 것은 아마 핏줄로 흐르는 정 때문 일거야. 지금 나한테 가장 큰 효도지. 의지할 곳 없던 그 시절 언니는 엄마 같은 동무였거든.

열여섯 찬바람 매섭던 그날 경순이 시집가다.

난 어릴 땐 순둥이여서 어른들이 순하다고 경순이라고 불렀어. 능월리에서 방하목으로 시집가던 그 때는 솜털도 가시지 않은 나이 열여섯, 남편은 경주이가로 이름이 이길선, 스무 살 이었어. 둘이 소꿉장난하듯이 결혼을 했지. 우리 어릴 적 2월 달은 살을 에는 찬바람에 뼈마디가 욱신거리는 추위였거든. 가뜩이나 작은 엄마 손길로 시집가느라 설움이 복받치는데 날씨까지 내 심경을 싸늘하게 만들었어. 마을 어른들은 나를 보며 소곤 거리셨어.

“애기가 추운 날 시집 왔구나.”

집안에서 시집을 가라니 정혼하고 난 어른들 말씀을 그대로 따를 뿐이었어. 어디 나만 그랬을까  동네의 큰 애기들이 다들 그렇게 시집을 갔고 나만의 서러움이라면 엄마 손길로 저고리도 만져주고 족두리도 쓰다듬어주는 다른 집 큰 애기와 달리 작은 어머니 손길로 시집을 갔지. 그래도 조카딸을 키워서 시집 보내준 작은 어머니가 너무 고마워. 5남매를 낳고 고생은 했지만 마음 설움은 많지 않았어. 농사는 아버님과 내가 지어서 살림을 일궜고 남편은 한학을 공부했는데 농사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어. 돈을 못 벌면 어쩌나 걱정 했더니 글공부를 한 덕에 물리가 트여 도회지에 나가 작명을 하고 봉투에 돈을 두둑이 가져오곤 했어. 면서기 월급보다 많이 가져왔어. 물론 아버님께 드리느라 내 차지까지는 올 기회가 없었어. 내 손에 한 2만원만 쥐어줘도 고단한 삶에 큰 위안이 됐을 테고 불평 담긴 내 입을 막았을 텐데 그이가 그 정도 눈치는 없었지. 그래도 그 돈으로 땅도 사고 살림을 불려나갔어.

결혼해서 5남매를 낳고 우리 금쪽같은 자식들 선호 동호 정화 정옥 승호 엄마가 되고 보니 일찍 아버지와 사별하고 개가한 어머니를 여자의 마음으로 조금 이해할 수 있었어. 아홉 살때 엄마를 졸졸 따라다녔는데 어머니는 외갓집에 나를 떼놓고 떠나셨어. 울면서 따라간다고 하니 외숙모가 나를 붙드셨지. 자식 떼놓고 가는 그 마음이 오죽했겠어. 사정을 모를 땐 원망도 하면 안 되는 거야. 속 타는 사정이 있겠지. 그리 생각해. 나를 떼놓고 떠난 어머니 때문에라도 난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자식들 지키려고 참고 살았지 뭐야 그랬더니 이름처럼 다시 봄날이 오네.

시집가니 시동생이 열두 살에 2학년 이었어. 그때는 제 나이 찾아서 입학하기가 쉽지 않아서 집안 여건 따라서 들쑥날쑥 학교에 갔지. 안내초등학교 2학년 구구단이 나오니까 시동생이 나한테 구구단을 알려줬어. 4단은 4개씩 숫자를 올리고 5단은 5개씩 올리라고 하데. 혼자서 외웠어 지금도 7단까지 잘 외우고 8단은 더디지만 할 줄 알아. 9단은 거꾸로 암산을 해. 받아쓰기 받침은 약간 헷갈려. 티브이 드라마 글씨 자막은 다 읽어. 가수 중에 권성희라고 ‘나성에 가면’ 부른 가수 있잖아. 자막으로 읽었는데 성이 같다고 이름만 봐도 마음이 가네. 친정도 부모가 있어야 가는데 부모님 다 안계시니 내 식구들만 오롯이 챙겼어. 남편은 57살에 당뇨로 돌아가셨어. 그니가 일찍 떠나서 그게 아쉽고 마음 아프지. 방하목 살 때 그이랑 다투면 해서네 집에 갔었어. 나보다 6살 언니였는데 내가 해서엄마 해서엄마 그렇게 불렀어. 나한테 은인이야.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사느라 속 터지는 일 있으면 그 집 가서 하소연하고 풀었거든. 보따리 싸들고 나가려던 마음도 그 집 가서 푸념 하면서 풀곤 했어. 살면서 그렇게 은인을 만나게 돼. 나중에 찾아가서 회포도 풀고 왔었지. 대단한 걸 베풀지 않아도 힘들 때 얘기 들어주고 맞장구쳐주는 사람만 있어도 인생에 힘이 나. 나도 그 기억으로 누가 푸념하면 잘 들어주곤 해.

春子, 이름처럼 다시 찾아온 봄 날 (박춘자 어르신)

이제 손톱에 꽃물 들이면서 호강하고 살아

학교에서 국어 산수도 배우지만 선생님 말씀이 좋아서 학교 다닐 맛이 나. 다 쓸 만한 소리야. 집에 있으면 그런 말 어디서 듣겠어  벌써 17년을 다녔어. 1회 학생들 몇 안 돼. 돌아가신 분도 있고 그 때는 40-50명인데 지금은 스무 명 조금 넘지. 66살에 들어와서 82살 됐네. 마음이야 그 때 그 마음이지. 큰 아들도 할아버지 됐으니 난 얼마나 늙었겠어. 손톱에 예쁜 봉숭아물을 들였어. 이제 물일 할 일이 거의 없어서 아마 가을 지나 겨울까지 곱지 않을까  지워질 걱정이 없어. 예쁜 손톱 가져도 될 만큼 호강하고 사네. 이젠 고운 생각만 하고 살아. 괴로운 게 없어 돈 괴로울 일도 없고 밥 괴로울 일도 없고 내 이름처럼 다시 따뜻한 봄날이야. 옥천 장에도 혼자 다녀올 수 있고 거동에 문제가 없지. 글루코사민 오메가 3도 열심히 챙겨먹고 말이야. 세상 좋아졌어. 어릴 땐 밥만 푸짐하게 먹어도 양반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이름 부르기도 어려운 그 약들을 다 챙겨먹으면서 살고 있으니 호강하는 거지.

손주들이 군대 가서도 휴가를 자주 나왔어. 반찬도 내 손맛에 길들어져서 할머니 한 것만 맛있다네. 내가 만든 호박 부침개가 그렇게 맛있다고 하면서 잘도 먹어. 그게 뭐라고. 부침개는 얇게 부치는 게 기술인데 내가 그걸 잘해. 가는 곳 마다 대접 받는 인생이 돼서 살만해. 젊은 면장님도 우리들 만나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사는 게 다 좋은데 거짓말은 조금 늘었어. 막내 승호가 전화를 잘해

“엄마 어디 아픈데 없어요?”

난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아야 걱정 마. 나 하나도 안 아프다”

그 거짓말은 양심에 하나도 안 찔려. 물론 여기저기 아프기도 하지만 아직 건강한건 역시 아들의 전화만한 보약이 없어. 바쁜 틈에 전화 걸어주는 그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되는 보약이 바로 자식이지. 효도가 별게 아녀 전화 한 통이면 부모가 힘이 나. 우리 동무들도 다 같은 마음일거야. 부모 자식도 작은 정을 나눌 때 더 애틋하고 살가운 거야!

인정이 뚝뚝 떨어지는 어르신의 구수한 입담이 메주 잘 띄운 된장찌개 밥상의 깊은 맛 같았다. 거기에 덤으로 목화솜 이불처럼 따뜻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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