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운 세상을 보느라면 고려말 이존오 李存吾의 시조 한편이 스친다. 구름이 무심 無心탄 말이 아마도 허랑 虛浪하다 중천 中天에 떠 임의 任意로 다니면서 굳이 광명 光明한 날빛을 따라가며 덮으니 구름이 아무런 생각없이 떠돌아 다닌다 함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믿어지지 않는다. 하늘 한가운데 떠서 제멋대로 다니면서 굳이 밝은 햇빛을 의도적으로 덮어 어둡게 하려는 그 속셈을 도무지 모르겠구나. 해를 상대로 한 구름의 무모한 짓거리, 즉 정의를 지우려는 불의의 잔꾀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백성들의 마음을 쓴 글이 아닌가 한다. 선거철이 되었다. 날씨는 영하이나 국민의 마음은 영상이다. 구름 같은 간신들이 공명선거를 훼손 할 우려도 간과 할 수 없어서이다. 선거철에 정치인들의 신은 ‘굽신’ 이라고 한다. 굽신거릴 때 신는 신발 이어서다. "역사의 연구 A study of history" 저자인 토인비는 ‘교훈으로서의 역사 교육’ 에서 역사의 반복을 말 하였다. 즉 역사는 생멸 生滅이 있는 유기체로써 발생ㅡ 성장 ㅡ해체의 과정을 주기적으로 되풀이 한다는 것이다. 해체시에 나타나는 것이 구름인 듯 하다. 구름은 순간적으로 햇빛을 가릴 수 있다. “구름이 떼지어 해를 가렸다”물감을 풀어 검게 덮었다.바람이 달려와 훅 날려 버렸다. 해가 미소 지으며 “구름아 장난치지마” 언젠가 善政으로 회복되겠지만 당장은 고통이다. '왕퉁이가 대감의 이마를 알리있나 고양이가 제사떡을 알리있나 말로 핵덩이를 공굴리듯한다. 두루미가 홍곡鴻鵠 (고니)의 뜻을 알리있나 라고 자위하지만 실정 失政의 폐 弊를 우려하는 것이 국민이다. 지난 주말 속초에서 강남까지 고속버스를 탔다. 3명씩10줄, 30명 정원 고급버스다. 필자는 가운데 줄에 자리 하였다. 가을로 가득채운 하늘을 보려면 창옆에 자리한 승객의 처분을 기대할 뿐이다. 왼편 승객이 커튼을 열어놓고 핸드폰을 보다가 커튼을 닫고 잠을 청한다. 바른쪽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후 같은 상황이 되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야 하는데 따분한 처지가 되었다. 하늘은 해와 달과 별을 띄운 우주이다. 비를 내리는 식량 창고이다. 빛으로 생명을 지켜준다. 하늘은 정직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 이런 하늘을 옆 승객에게서 창을 빌려서 보면서 강남역까지 왔다. 하늘의 뜻인 공명선거가 땅에서도 이루어 지길 구하였다. "죽는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 삶"은 민족을 가슴에 품고 27세에 세상을 떠난 윤동주 만의 읊음인가? 우리 국민 모두가 부를 노래이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 1위가 한글이다. 세계 최고 두바이 부르스칼라파 828m 초고속 빌딩을 건축하여 하늘의 높이를 바꾼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우리 모두 창을 열어 하늘을 보자. 오늘도 시민들의 행진에 청신호가 켜지기를 기도합니다. <저작권자 ⓒ 안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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