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경제학자 A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 國富論 에서 "개인의 열심에 입각한 경제적 행위가 결과적으로는 생산력의 발전에 이바지 하며 이를 매개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라 정의 하였다. 이 손에 의하여 시장에 쌓여있는 많은 물건은 수요와 공급 과정중 형성되는 가격으로 판매에 이른다는 것이다. 안양에는 안양발전과 여성들의 힘이 되어준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곧 향년 82세로 지난 11.25 별세한 정어진 안양시 여성단체 협의회 초대 회장이다. 1960년대 초 20대 초반인 그는 시흥군청에서 공직을 시작하였는 바 당시의 빈곤하였던 사회 환경은 그의 시선을 <빈곤여성, 빈민아동>에 꼿게 하였다. 부녀 아동업무에서 출발, 40여년간 안양과 경기도청을 오가며 여성의 손발이 되었으며 종국에는 경기도 여성정책실장, 여성회관장 등을 통하여 '사화발전을 향한 여성들의 역할, 을 탐구하는데 까지 이르렀다. "우리한번 잘 살아보세" 를 외치던 새마을 사업 중에는 여성들 중심으로 ‘한가정 한통장’ 마을 유치원, 절미저축, 아나바다(아끼고,나누고,바꾸고,다시쓰기) 절수,절전 운동을 펼쳤으며 "토요일은 가족과 함께"운동을 펴 건강한 가정만들기에 진력하였다. 1977년 수해시에는 여성단체 일선 조직을 모두 가동하여 답지하는 지원인력 활용,식량과 의류, 구호품의 배분을 빈틈없이 이뤄냈다. 공직 후인 2001년 부터는 아동복지 시설인 <좋은집>원장으로 봉사하였다. 이 시설은 한국 최초 의학박사 해관 오긍선 박사가 믿음, 소망, 사랑을 원훈으로 내걸고 부모 결실로 불우한 성장 과정에 놓인 아이들을 돌보는 곳으로 1918년 경성보육원으로 시작하여 기독 해관 좋은집으로 개명되었고 젖먹이로 부터 18세까지 고아들이 정원장과 24시간을 생활하였다. 평생 독신인 그는 아이들과 함께 먹고 자며 뒹굴렀다. 본인은 빛 바랜 옷을 입으면서도 원생들에게는 좋은 옷을 입혔고 씀씀이도 자신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냉정하였으나 직원들과 이웃의 경조사 및 어려움에는 너그러움이 묻어 있는 성의를 표했다. 이번 장례 기간 부조금 접수대에는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은 받지 않습니다"라 씌여 있었다. 한시대 안양 발전에 이바지한 존경받는 인물 ‘보이지 않는 손’ 정어진 장로님은 11월27일 시청 마당에서 60만 안양시민장으로 시민들과 작별 인사 후 청계 고향마을 산기슭에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셨다. 오늘도 안양 시민들의 행진에 청신호가 켜지기를 기도합니다. <저작권자 ⓒ 안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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